촌충 ― 몸 전체가 생식기인 괴상한 벌레
지금부터 얼마 전만 하더라도 전국민의 기생충 감염률이 매우 높았다. 기생충의 대부분은 회충이었고 인간의 분뇨를 비료로 직접 야채에 뿌리기 때문에 분뇨 속에 있던 회충의 알이 입을 통해서 야채와 함께 체내에 들어가기 때문에 아주 없애지 못했다. 요즈음에 들어서는 분뇨를 사용하는 일이 거의 없어지고 화학 비료를 사용하게 되었기 때문에 회충의 기생률은 감소했지만, 반대로 화학물질에 의한 피해가 문제로 대두되었다. 회충이라든가 십이지장충과는 다른 종류이지만 옛날부터 인간과 기타 대형 포유류 동물의 기생충으로써 촌충이라는 벌레가 알려져 있다.
세상에서 이처럼 뻔뻔스러운 동물은 없을 것이고 또 이처럼 안일한 생활을 탐하는 동물도 없을 것이다. 촌충은 인간의 소장에 기생하고 길이 5,6미터에 달하는 장대한 동물이다. 대개 인체 속에 살기 때문에 안전하기가 이를 데 없다. 적에게 습격 당한다든지 하는 가능성은 전혀 없기 때문에 적을 공격하거나 적으로부터 방어한다든지 도망친다든지 하는데 필요한 기관이 불필요하므로, 몸의 구조가 극히 간단하다. 운동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인간의 소장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섭취한 영양분이 충분한 먹이가 된다, 게다가 그것마저도 완전하게 소화된 상태로 계속적으로 보내져 온다. 따라서 촌충은 자기 자신의 소화기관을 가질 필요가 없고, 몸의 표면으로부터 무한대의 영양분을 흡수하기만 하면 먹을 것 걱정은 끝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동물처럼 먹을 것을 찾는다든지, 발견한다든지, 쫓아간다든지 하는 일을 할 필요가 없고 운동근육은 물론이고 감각기관도 퇴화해서 눈은 물론이고 코도 없다. 게다가 촌충에게 있어서 더욱 사정이 좋은 것은 인체의 소장 내부라는 것은 여름이고 겨울이고, 밤이고 낮이고 온도와 습도뿐만 아니라 환경의 변화도 전혀 없다는 것 때문에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기관도 전혀 필요가 없다.
이렇게 되면 동물은 도대체 무엇이 남을까? 그것은 생식기관만 남는다. 즉 촌충은 그 장대한 몸이 몇백 개나 되는 작은 체절(體節)로 나누어지지만 생활에 필요한 기관은 거의 퇴화하여 소실되고 남아 있는 것은 각 체절에 가득 찬 정소(精巢)와 난소가 있을 뿐이다. 즉 전신이 모두 생식기관인 동물이다.
해파리 ― 생각을 못하는 동물
해파리는 바닷물 속에서 사는데, 커다란 갓을 갖고서 둥실둥실 수면 위를 떠돌아다니는 반투명의 물렁물렁한 동물로 가장 하등 동물 가운데 하나이다. 바다뿐만이 아니고 강가의 모래밭에 고인 물에서도 갓의 직경이 2센티미터도 안 되는 귀여운 민물해파리가 살고 있다.
이 민물해파리는 전쟁 때 방화용수(防火用水)처럼 미리 길어다 놓은 물 속에서 발견되는 겨우도 있다. 해파리가 육지를 걸어다닌다든지 하늘을 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므로 어떻게 해서 이러한 그릇에 들어 있는 물 속에 살게 되었는지 그 이동 경로는 확실하지 않다. 물새의 다리 따위에 붙어서 옮겨진다고 하더라도 그런 물새가 과연 방화용수 따위를 찾을까?
바다의 해파리는 인간을 쏘는 경우가 많다. 고깔 해파리는 기다란 촉수를 가지고 바닷물에 실려서 연안으로 밀어 닥쳐 해수욕객을 마구 쏘아, 통증이 지독하므로 전기해파리 따위로 불린다. 그렇지만 해파리가 바닷물 속에 있는 동물을 쏘는 것으로 그 동물을 죽여서 잡아먹는 것은 아니고 쫓아버리는 것뿐이어서 해파리에게는 별 이득은 없다. 실제로는 해파리는 자기 의사와 관계없이(의사 따위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 촉수가 무언가에 닿기만 하면 그것이 물고기이든 인간이든 나무 조각이든 관계없이 자동적으로 가시가 박히고 자동적으로 산성의 독액이 주사되게 된다. 해파리에게는 "그것을 물리친다."는 정도의 의미 밖에 없다.
해파리는 하등한 동물이지만 그렇더라도 암컷과 수컷의 구별은 있다. 수컷의 정자와 암컷의 알은 바닷물 속에서 만나 수정한다. 이 장소는 대개 깊은 만의 가장 깊숙한 후미에 있는 암초시대로 번식시기가 되면 수컷 해파리도 암컷 해파리도 바닷물의 흐름을 타고 만의 깊숙한 후미에 오며 든다. 해저에서 수정된 수정란은 부화하더라도 그 상태로 곧장 해파리가 되지는 않는다. 수심 4,5미터의 해저에 있는 바위에 식물이 싹을 트게 해서 해파리와는 다른 동물체가 나온다. 그 동물체는 높이 1센티미터 약간 안되고, 직경은 그 절반도 안 되는 매우 조그마한 원통형을 하고 있고 굳게 붙어서 생활한다. 이 소형의 동물을 폴립이라 하는데 형상은 말미잘과 매우 비슷하다. 원래 해파리와 말미잘은 친척 관계로 인연이 가까운 동물이다. 폴립은 한겨울에 태어나서 조금씩 성장하여 이른 봄 수온이 따뜻해질 무렵 옆으로 몇 개의 잘린 자국이 생긴다. 3월말 경이 되면 그 잘린 자국이 하나씩 하나씩 떨어져서 한 마리 한 마리의 독립된 작은 해파리가 되어서 물위에 떠다니기 시작한다.
고래 ― 보호하지 않으면 전멸한다.
자원이 없는 나라는 여러 가지 동식물을 유용자원으로 개발하려고 하고, 자원이 있는 나라라 하더라도 탐구심과 모험심을 갖고 새로운 자원을 자연 속에서 찾는다. 이렇게 해서 18세기부터는 바다에 사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동물인 고래가 자원으로 주목받고 포획되기에 이르렀다. 고래는 몸길이 30미터 가까이 되는 종류도 있어서 한 마리를 잡으면 다량의 유지(乳脂)를 얻을 수 있다. 그 유지를 원료로 해서 식용유도 얻을 수 있고, 가공해서 비누, 밀랍, 마가린, 약품 따위도 제조할 수 있고, 또 다량의 고기는 식용으로 이용할 수가 있다. 그 외에 뼈나 수염까지 가공해서 상품으로 만드는 일도 가능하므로 실로 커다란 상품가치를 갖고 있다. 또 대양의 한가운데서 고래를 쫓아가서 작살을 내던져 고래를 잡는 스릴은 인간에게 하는 보람을 느끼게 하고, 남성적인 용감함이 있으므로 19세기에는 유럽 여러 나라에서 경쟁적으로 포경선을 건조하여 고래잡이에 나섰다. 고래를 잡는 스릴과 용감함을 문호 멜빌의 소설《백경》등에 소개되어 전세계 사람들의 피를 끓게 했다. 고래는 원래 동작이 재빠른 동물은 아니었지만 19세기의 소형 포경선에는 대양에서 고래를 찾아내는 일 조차 곤란하고, 게다가 한번에 여러 마리를 잡는다 하더라도 너무 크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 없으므로 실제로 작살로 잡는 것은 겨우 몇 마리였다.
그러나 20세기가 되자 1만 톤의 포경모선(捕鯨母船)이 건조되어 몇 척의 포경선을 번갈아 내보내고 잡은 고래는 모선으로 끌어 올려져 분해되고 가공되어 고래를 한 번에 몇 마리 잡는다 하더라도 처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점차 대대적인 고래사냥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모선은 계속 증가하는 한편 멀리 남태평양으로 헬리곱터까지 싣고 출항하게 되었다. 고래는 헬리곱터나 전파탐지기로 간단히 발견되고, 게다가 배와는 밀접하게 무선 연락을 취하여 고래를 뒤쫓고, 작살의 정밀도를 높이기 위해 발견하자마자 도망 못 가게 작살을 던져 버린다. 고래는 2년에 한번 정도 밖에 새끼를 낳지 않고, 새끼의 숫자도 적고 성장하는 데에 기간이 오래 걸리므로 무턱대고 남획하면 곧 그 숫자가 줄어들어 버린다.
제 2차 세계대전이 진행중이던 때 유럽 각국에서는 그제서야 고래가 감소하는 것에 눈길을 돌려 잔혹한 포경방법에 대해서 반성을 하기 시작하여 자원도 고래 이외의 것에서 찾았으므로 1946년에 국제포경단속조약이 제정되었다.
야생동물 ― 멸종을 막는 것이 인류가 살아 남을 수 있는 길
자원이라는 단어는 지금까지 인간이 이용할 수 있는 물건이란은 입장에서 사용해왔다. 예를 들면 식량자원이라든가 광물자원이라든가 주로 천연에 존재하여 개발하면 직접 인간생활에 도움이 되는 재료를 자원으로 불러 왔으므로 인간 생활과 관계가 없는 벌레라든가 잡초라든가, 야생동물은 자원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자연계를 구성하는 전체를 전망할 때, 이들은 직접적으로는 인간의 생활과 관계가 없는 득이 보이지만 자연의 구성원으로서 대기의 정화, 하천의 치수 등에 관계가 있고, 이들의 존재를 잊어버리면 인간의 생존이 위협받는다는 사실이 차츰차츰 밝혀졌다. 인간의 손에 의한 자연 파괴가 진행됨에 따라서, 인간이 자기에게 이익이 있는 것만을 보호하고 인간에게 조금이라도 해를 끼친다고 생각되는 것이나 인간과 경쟁하는 것을 박멸해 버린다는 사고방식으로는 인간 자신의 목을 졸라매는 결과가 된다는 것이 명백하다. 지금 인간 전체에 반성하는 분위기가 생기고 있다.
코끼리, 하마, 기린, 얼룩말 등 아프리카 초원에 살고 있는 야생동물은 인간이 이용하여 도움을 받을 만큼 가치도 없고 오히려 인간 생활을 침해하는 동물이었다. 그리고 때로는 맹수가 인간의 목숨을 앗아가고, 인간의 전답을 망가뜨리기 때문에 그들을 대량으로 사살하고 또 사살할 때의 그 쾌감만을 느끼기 위하여 죽여왔다. 그렇지만 원래 아프리카 벌판은 그들 야생동물의 것이고 그들의 구역이고, 그들만의 평화로운 세계였다. 그 곳에 전답을 일구어서 그들의 생활을 위협하고, 그들을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어 야생동물을 멸종의 가장자리로 쫓아 보낸 것은 다름 아닌 인간 자신이었다. 다른 동물의 생활권에 전답을 일구고 그 전답을 그들 야생동물이 망가뜨린다고 해서 사살하는 것은 너무 제멋대로 군것은 아닐까. 인간도 또한 자연의 일원으로서 역사적으로도 그들과 같은 장소에서 때로는 협력하면서 오랜 세월 평화롭게 공존해 왔지만 근대 문명은 총포나 자동차를 발명하여 이러한 균형을 일방적으로 무너뜨려 버렸다. 지금은 야생 생활을 팽개친 인간이지만, 야생동물은 쓸모가 없고 그 야생동물과 공존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사고방식은 올바르지 않다.
야생동물은 광대한 구역을 거처로 삼고 우기와 건조기에는 해에 따라서는 몇백 킬로미터나 이동한다. 동일한 장소라 하더라도 작년에는 몇백 마리나 되는 코끼리가 떼를 지어 나타났었는데, 동일한 시기인 올해는 한 마리도 안 나타나는 때도 있다. 그 때문에 야생동물을 보호하려면 넓은 지역 전체를 어느 정도 자연 상태 그대로 놔두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일은 지역에 따라서는 인구 급증이나 식량문제의 긴박함 때문에 개간을 진행하는 인간의 생활과 맞닥뜨리지만, 지금 이들 야생동물을 완전히 멸종시켜 버리면 영구히 그 모습은 지구상에서 사라져서 나중에는 무미 건조한 자연밖에 남아 있지 않는다.
최근 해상을 표류하는 커다란 바다거북의 사체를 종종 어선에서 줍는 일이 있다. 그 중 몇 마리는 목에 커다란 비닐이 막혀서 질식사하기도하고 소화기관이 막혀서 죽었다고 한다.
바닷 속을 떠도는 해조류라고 생각하고 먹는 비닐 때문에 죽어 가는 바다거북, 야생동물을 이런 상태로 멸망시키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까?
물고기 알 ― 대구알, 청어알, 연어알의 비밀
닭이 낳은 날달걀을 그대로 먹기도 하고 물고기의 알을 날것으로 먹는다든지 하는 것은 육식, 채식 외에 난식(卵食)이라는 말로 부를 수도 있다. 보통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으로 '대구알'이 있다. 북태평양의 바다에 사는 대구라는 물고기의 알 덩어리이다. 이'대구알'의 한 개 한 개의 알은 '연어알'이라는 연어의 알이나 '청어알'이라 부르는 청어의 알과 비교해보면 너무나 작기 때문에 한 개의 알 덩어리에 들어 있는 알의 개수는 천이나 만 단위의 숫자는 아니다. 한 마리의 암컷 대구가 알을 낳는 알 덩어리에는 3천만개 정도 되는 알이 들어 있다고 한다. 자신이 직접 확인해보고 싶은 독자는 한가한 틈을 타서 '대구알'을 사다가 천천히 헤아려 보아도 좋다. 대구보다 더한 물고기도 있다. 개복치라는 대형 물고기는 한 마리의 암컷이 놀랍게도 2억 개의 알을 낳는다고 한다.
대구나 개복치의 알이 전부 수정되어 부화되고, 생육한다고 가정하면 아마 태평양도, 북극해, 인도양도, 대서양도 몇 년 안되어서 대구와 개복치로 가득 차서, 이들 물고기의 등을 밝으면서 바다 위를 걸어서 건널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그것은 먼저 모든 알이 수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고기라는 놈은 체외수정을 하기 때문에 수컷의 정자도 암컷의 알도 모두 바닷물 속으로 방출된다. 물론 아무렇게나 방출되는 작은 알이 게다가 크기가 십 몇 미크론밖에 되지 않는 정자와 망망대해에서 우연히 만날 기회는 거의 제로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번식기가 되면 암컷 물고기도 수컷 물고기도 죄다 좁다란 해역으로 무수히 몰려들어 좀 더 수정률을 높일 수 있는 상태에서 교대로 사정하고 알을 낳는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수정률은 몇 퍼센트라는 저조한 편일 것이다.
또 수정란이 되었다 하더라도 모두가 부화하여 치어가 되는 젓은 한계가 있다. 대체로 물고기의 알 덩어리는 대단히 영양이 풍부하여 다른 물고기나 바다에 사는 동물이 눈을 부릅뜨고 끊임없이 찾아다니는 절호의 먹이이기 때문에 교묘하게 해조류의 아래에다가 숨긴다 하더라도 곧 발견되어 버린다. 그리고 잡아먹힐 때는 대개 알 덩어리째로 삼켜 버리기 때문에 한순간에 다수의 수정란이 없어진다. 게다가 알 덩어리는 적이 접근한다 하더라도 피할 수도 없고 저항할 수도 없다. 결국 알을 즐겨먹는 다른 동물에게 발견되면 이미 빠져나갈 수단은 전무한 것이다. 적에게 잡아먹히는 것을 모면한 수정란은 수질이나 수온이 적당하면 부화한다. 그렇지만 예년보다 수온이 낮다든지, 수질이 다소라도 다르면 부화율은 더욱 떨어져 버린다. 간신히 부화한 치어는 대구의 경우 몇 밀리미터 크기밖에 안되고, 물론 유영능력도 약하고 적에게 대항할 힘도 없다. 치어는 그런 과정을 거쳐서 해조류의 그늘에 숨기도 하고,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하여 적의 습격을 피하려고 하지만 처음 얼마간은 플랑크톤처럼 바닷물 속에 떠다니므로 다른 물고기의 좋은 먹이가 되어 버린다. 커다란 물고기 가운데도 미세한 플랑크톤이나 치어를 물과 함께 마시는 식사를 대신하는 놈이 많아서 한입에 몇천 마리나 되는 치어를 들어 마셔 버린다. 이렇게 해서 그렇게 몇천만, 몇억이나 되는 알에서 어미 물고기가 되는 놈은 겨우 몇 마리에 지나지 않는다.
치어 ― 어미 잃어버린 생존을 향한 길
대구나 개복치의 알이 어떤 조선으로 급속히 수정률이 올라가고, 또 알 덩어리가 다른 물고기에게 잡혀 먹히지 않고 수온이나 수질도 안정되어서 부화율이 현저하게 높아져서 평상시보다 몇백 배나 되는 치어가 힘차게 헤엄친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면 어른으로 생육할 수 있는 물고기의 숫자도 훨씬 증가하여, 대양이 물고기로 가득 찰 정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매년 몇 십 배, 몇백 배로 증가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에 대한 답은 "아니오"이다. 알에서 막 부화된 몇 밀리미터 크기의 대구 치어가 머지않아 몸길이 1센티미터, 5센티미터로 크기 위해서는 막대한 먹이가 필요하다. 대구가 몇십 배로 불어난다 하더라도 그것을 뒷받침하고 그것을 키울 먹이가 증가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은 도중에 굶어 죽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게다가 약간의 먹이를 둘러싸고 동료들끼리 서로 먹이 쟁탈전이 벌어지고, 교대로 같은 형제 대구를 뒤쫓아 다니기도 하고 상대가 발견한 먹이를 곁에서 약탈하기도 해서 자신의 목숨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되면 먹이를 찾는 데에 몇 배나 더 노력과 운동을 하여야 하고, 또 동료를 쫓아 버리기도 하고, 동료로부터 빼앗기도 하는 데에도 몇백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겨우 획득한 먹이조차 영양을 채워줄 정도가 안되고 차츰차츰 체력이 쇠약해질 뿐이다. 먹이가 절대량이 부족하고 먹이를 얻기 위해서 매일 힘에 겨운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하루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날이 사라져 버린다. 이렇게 해서 굶어 죽는 놈, 영양 실조로 낙오하는 물고기가 차츰 늘어나고, 영양 불량 때문에 쇠약해지고, 쇠약하기 때문에 먹이를 획득하기가 곤란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되어 결국은 무사히 어미로 자랄 수 있는 놈은 몇 마리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이르고 만다.
자연계라 하는 데는 어떤 동물과 그 동물의 먹이, 그 동물을 먹이로 하는 다른 동물과의 3자 관계에서 상상 생존할 수 있는 숫자가 결정되는 것이므로 자신을 잡아먹는 적에 의해서 증가가 억제되고, 또 자신이 잡아먹는 먹이의 양에 의해서 생존 숫자가 제한되는 까닭이다. 이러한 관계를 자연의 균형이라 하고 무슨 원인으로 어떤 동물이 일시적으로 증가된다고 하더라도 위에서부터 억제 당하고 아래로부터 제한을 받기 때문에 결국은 원상태로 되돌아가 버린다.
대나무 ― 꽃이 피면 들쥐가 증가하는 까닭
대나무는 꽃을 피우면 시들어 버린다. 대나무는 확실히 놈처럼 꽃을 피우는 일이 없어서 항상 지하 줄기로 번식하고 있다. 지하 줄기는 지하를 수평으로 뻗어서는 '수염뿌리'를 내려 여기저기에 새로운 싹을 내서 지상에 쑥 내민다. 이것이 '죽순'으로 그대로 놔두면 급속히 자라서 새로운 대나무가 된다. 이렇게 해서 매년 지하뿌리를 펼쳐서 새로운 대나무를 만들어 일족과 함께 번영하지만 10년이나 20년을 같은 장소에서 거처를 하고 있으면 차츰 땅속의 영양분, 특히 대나무 체내에 흡수된 채로, 땅속으로 돌아가지 못한 특수한 양분이 부족하여 얼마 안 있어 대나무 일족의 생활을 어렵게 만든다. 그대로는 대밭 전체가 한순간에 전멸해서 이미 '죽순'을 만드는 것도 지하줄기를 뻗는 것도 불가능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종족 유지의 수단으로써는 꽃을 피우고, 종자를 맺는 방법뿐이다, 따라서 오랜 기간 영화를 누리던 대밭이 전체적으로 노쇠해서 점점 전멸 일보직전에 다다를 때에 꽃을 피워서 자손을 남기는 것이다. 결국 "대나무에 꽃이 피면 시든다"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과관계는 반대로 "점점 시들어 가는 대나무는 꽃을 피운다"라는 편이 올바를 것이다.
대나무의 부하 같은 '조릿대'도 똑같아서 점점 노후화 되면 꽃을 피운다. 그리고 이윽고 열매를 맺는데 열매는 반짝반짝 빛나며 상당히 아름답다. 이처럼 조릿대의 열매는 몇십 년에 한 번밖에 열리지 않는 데다가 매우 아름다워서 옛날부터 귀중하게 여겼다.
그런데 이 조릿대의 열매는 영양가가 높고 야생 들쥐가 매우 좋아하는 먹이이다. 쥐는 한편으로는 쥐를 공격하는 소리개, 매, 올빼미 같은 조류나 뱀 따위에 의해서 위로부터 억제당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쥐의 먹이가 되는 도토리나 호두열매의 수가 한정되어 있으므로 이들 먹이에 의해서 아래로부터 제약을 받아서 일정한 숫자만이 생활한다. 몇십 년에 한번밖에 열리지 않는 조릿대의 열매가 결실이 되어서 하늘에서 쏟아져 내린 것처럼 무진장한 먹이가 눈앞에 준비되어 있다면 쥐는 조릿대 열매에 덤벼드는데 열중하여 지금까지 여위었던 쥐가 점점 살이 쪄서 건강하게 되어간다. 이렇게 되면 운동도 민첩하게 하고 소리개나 뱀에게 공격당하는 일도 줄어들고, 암수 모두 정력이 좋아져서 생식력이 증대해 간다 과거에도 조릿대 열매가 익으면 들쥐가 무섭게 증가하여 때로는 대집단을 이른 사실이 기록되어 있고, 일정한 면적 내에 너무 증가하면 대거에 줄줄 강을 건너서 이동하는 것이 관찰되어 있다. 그러나 그런 사치스런 생활도 오래가지 않고 늘어날 만큼 늘어난 쥐의 세계에도 다음해는 극단적인 식량 부족에 빠진다. 왜 그런가 하면 2년 연속해서 조릿대의 열매가 열리지 않기 때문에 원래의 도토리만의 부족한 식량밖에 얻을 수 없다. 그리고 너무 불어나 쥐는 소리개나 올빼미의 가장 좋은 먹이가 되어 버린다.
쥐 ― 스트레스로 자멸한다
자연계의 동물은 모두 먹이의 양과 천적의 수에 따라서 생존 숫자에 제약을 받는다. 예를 들면 쥐는 먹이인 도토리나 호두열매의 양, 천적인 소리개, 매, 올빼미 같은 조류나 뱀의 숫자에 의해서 제약받는다. 꿀벌은 꽃의 양과 꿀벌을 공격하는 거미나 작은 새에 의해서 제약을 받는다. 그렇다면 먹이는 무진장에다 천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특별한 조건을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그러한 환경에서 동물을 기른다면 무한정으로 증가하지는 않을까?
예를 들면 기운이 팔팔한 쥐 부부를 몇 쌍인가 차고 같은 장소에 넣고, 먹이는 얼마든지 투여해 준다. 쥐가 좋아하는 영양 만점이 먹이를 창고 안에다 막 물을 붓듯이 투여하여 양이 줄어들면 계속해서 공급해 준다. 물론 그 창고 안에는 소리개, 매, 올빼미 따위는 넣지 않고 뱀이나 족제비 따위도 절대로 들어가지 않도록 철망을 둘러놓는다. 이렇게 해서 쥐를 최상의 조건으로 보호해주면 확실히 많은 새끼를 낳고 그것이 단기간에 자라서, 또 새끼를 낳아서 차고 안에 가득 찰 만한 기세로 늘어간다. 혈족결혼에 의한 유전적인 피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때때로 외부에서 다른 계통의 젊은 부부를 넣어 주고 도대체 몇만 마리까지 늘어났는가를 관찰해 본다. 어느 한도까지 늘어나면 쥐는 픽픽 죽기 시작하여 급속히 그 수가 감소한다. 그리고 가장 숫자가 많았을 때의 3분의 1정도까지 줄어들면 또 증식하기 시작하고, 그리고 또 줄어든다고 한다. 어느 범위 내에서 증감(增感)을 되풀이 할 뿐으로 그 범위 이상으로 늘어나는 일은 불가능하다.
도중에 픽픽 쓰러져 죽는 것은 전염병이나 유전병이 아니다. 죽은 쥐를 해부해서 원인을 조사해보면 대부분은 비장이 커진다든지 부신 등의 내분비계통에 이상이 일어난 것을 알 수 있다. 이 증상은 공포, 과로, 흥분 등이 일어난 경우에 생기는 소위 스트레스 증상과 거의 동일하다. 일정 면적 안에서 종족의 숫자가 너무 불어나면 먹이가 남아돌고 또한 천적이 없다 하더라도 생존이 불가능한 조건이 생긴다는 것, 그것이 스트레스였고 언제나 동료와 맞부딪쳐서 놀라거나, 동료의 냄새나 동료가 내는 소리에 신경을 쓰기 때문에 발생한 신경피로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는 것은 앞으로의 인간 생활, 특히 단지나 인구가 밀집된 도회지 생활에 무언가 중대한 시사를 주고 있다.
북극곰 ― 자연은 임금의 존재를 허용치 않는다.
작은 곤충은 잠자리에게 잡아먹히기도 하고 거미의 밥이 되기도 한다. 그 잠자리나 거미는 작은 새에게 잡아먹힌다. 작은 새는 소리개, 매 따위에게 공격당하기도 하고 뱀이나 족제비에게 잡아먹히기도 한다. 그 뱀도 매나 독수리 같은 맹금류에게 잡아먹히는 수도 있고, 반대로 매나 독수리 둥지 안에 있는 알을 뱀이 먹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동물계는 잡아먹느냐 잡아먹히느냐의 격렬한 투쟁으로 낮과 밤이 지나고, 적에게 공격당하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과 함께 자신의 먹이를 혈안이 되어서 찾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살기 위해서 자신의 먹이를 혈안이 되어서 찾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살기 위해서 피투성이가 된 매일 매일을 보낸다. 백수의 왕이라는 사자조차 팔짱만 끼고는 있을 수 없는 실정이다. 아무리 사자가 강하다 하더라도 매일 들판을 이리 저리로 뛰어다니며 먹이가 되는 토끼 같은 작은 동물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토끼 따위는 도망치는 발걸음도 빨라서 작은 굴이나 나무 동굴로 안전하게 도망쳐 버리고, 게다가 대개 주위와 비슷한 색깔이나 형태를 하고 있으므로 발견하는 것 자체도 쉽지가 않다. 만약 토끼를 발견하여 뒤쫓는다 하더라도 도망쳐 버려서 공쳤다고 단념해 버리는 일도 허다할 것이다. 세 마리를 발견했다 하더라도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그런 일도 종종 있을 것이다. 사자가 젊어서 원기 왕성할 때는 아직 그렇다 하더라도 늘어서 운동신경이 둔화된 때는 매일 매일이 비극의 연속으로 젊은 날을 그리워하면 늙은 몸을 한탄하면서 야위어 쇠잔해가는 비애의 나날을 보낼 것이다. 그리고 사자의 세계에는 자식이 부모를 봉양한다는 예도 없고 양로원도 없다. 단지 자신의 힘만 의지해야 하는 혹독한 세계이다.
북극해의 자연도 똑같다. 북극해 부근은 물과 빙산밖에 없고 육상식물도 없는 비교적 단순한 세계이다. 바닷물 속에 있는 플랑크톤, 그 플랑크톤을 먹고 생활하는 치어나 작은 물고기, 그 작은 물고기를 먹고 생활하는 대구 같은 대형 북태평양 물고기, 그 대구를 쫓아가 잡아먹고 사는 생활하는 바다표범, 그 바다표범을 주식으로 먹고사는 순백의 대형짐승인 북극곰, 북극해의 동물은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이 중의 바다표범은 먹이인 대형 물고기의 숫자와 천적인 북극곰과의 사이에 끼어서 숫자가 증가하는 일도 없고, 그렇다고 줄어드는 일도 없다. 북극곰은 이 북극지방에서는 대장이어서 먹이가 되는 바다표범이 많이 있어도, 자신을 공격해 올 천적은 전혀 없고 그래서 두려움이란 것도 없으므로 누구와 마주치거나, 어떤 형태를 보더라도 두려울 것은 조금도 없다. 그렇다면 북극곰은 언제나 즐겨먹는 바다표범을 잡아먹고, 통통하게 살이 쪄서 언제나 느긋하게 지내는가 하면 결코 그렇지는 않다. 이처럼 그 지방에서는 가장 강하고 공격받을 걱정도 없는 정상에 자리한 동물이라 하더라도 먹이를 찾는 고생, 먹이를 뒤쫓는 수고는 사자와 비슷하다. 게다가 이처럼 기후가 혹독한 극지방에서는 혹한에 대해 버티는 힘이 가장 약하고 번식력 또한 가장 약한 것이 이 정상에 있는 동물이다. 북극곰 같은 정상에 자리한 동물이 먹이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해마다 증가해 가는 바다표범이 늘어나는 숫자에 비례해서 북극곰의 생존 숫자가 제한을 받기 때문에 정상에 있는 동물의 숫자는 매우 적다.
사슴 ― 천적만이 적은 아니다
미국의 카이밥 고원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서 그 지역에 사는 사슴 숫자의 증감을 계산한 유명한 통계가 있다. 카이밥 고원의 약 3천 평방킬로미터의 지역에 사고 있는 사슴을 1905년에 계산했을 때에는 약 4천 마리였다. 원래 이 곳이 숲으로 덮였을 때는 많은 사슴이 있었지만 점점 줄어들었으므로 그 보호대책의 첫걸음으로 실제로 살고 있는 사슴 숫자를 조사했던 것이다. 조사해본 결과 단지 4천 마리밖에 없었으므로 이것을 보호하고 증식시키기 위해서 우선 사냥꾼을 시켜서 사슴을 잡아먹는 푸마나 아메리카 이리를 사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 20년에 걸쳐서 대규모의 사냥이 계속되어 놀랍게도 7백 마리 이상의 푸마가 사냥꾼에게 사살되었고 아메리카 이리는 7천 마리 이상이나 사살되어 버렸다.
이리하여 1905년에 4천 마리였던 사슴은 1918년에는 약 10배로 불어나 4만 마리가 되었고 그 5년 후인 1923년에 조사해 봤더니 약 10만 마리에 달한다는 보고가 있었다. 그 후로도 푸마나 아메리카 이리의 사냥이 계속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사슴은 10만 마리를 정점으로 해서 이번에는 줄어들기 시작하여 1939년에는 가장 사슴 숫자가 많았던 해의 10분의 1인 1만 마리까지 감소되어 버렸다. 그 후에 또 증가하기 시작하여 1만 마리에서 5만 마리 정도 사이에서 대체로 안정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사슴을 공격하는 푸마나 아메리카 이리의 존재에 상관없이 일정한 면적 안에서는 일정 수 이상의 사슴이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결국 사슴이 극단적으로 증가하면 당연히 먹이인 풀 종류가 부족하고, 또 3천 평방킬로미터 안을 10만 마리 이상의 사슴이 달려 다닌다면 풀의 새싹도 밟아서 망가뜨려 버려, 사슴이 필요로 하는 만큼 자라지 않은 결과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야외에 있는 실제의 동물의 숫자는 먹이와 천적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고 좀 더 복잡한 요소가 얽혀 있다. 예를 들면 다시 들쥐의 생활을 생각해 보자. 야외의 풀밭에 사는 쥐가 늘어나면 직접적으로 쥐의 먹이가 부족해진다. 먹이가 부족하면 영양상태가 나빠져서 운동능력이 저하되고 적으로부터 공격받는 횟수가 많아져서 번식력도 저하된다. 또 집을 지을 장소가 차례로 부족하고, 조건이 좋은 장소에다가 집을 준비할 수가 없게 된다. 예를 들면 축축한 장소라든가 충분히 숨을 수 없는 장소에 집을 지으면 쥐는 건강을 해치게 되어 병원균에 대한 저항력이 떨어지기도 하고, 또는 천적인 소리개나 매에게 쉽게 발견된다. 숫자가 늘어나면 그렇지 않아도 하늘을 나는 맹금류에게 발견되기 쉬워지지만, 지금까지처럼 풀숲으로 덮여서 상공에서 보이지 않던 장소만을 왕복할 수밖에 없으므로 경계가 불충분하게 된다. 그리고 귀가 소리개나 매에게 많이 잡아먹히면 반대로 소리개나 매에게 많이 잡아먹히면 바대로 소리개나 매 쪽은 활기를 띠어 점점 숫자가 늘어나고, 감각도 운동력도 좋아져서 언제라도 상공에서 감시를 계속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수가 늘어나 쥐에게는 유리한 조건이 전연 없고 불리한 조건만 남아 있게 된다. 이리하여 쥐에게 있어서는 증가한다는 것이 그대로 감소하는 원인이 된다.
e-의료법정 비한의원 금호이벤트 언니만따라해 e디시마켓 잼모갤러리 ♣ 자이 ♧ ♡ 아름다운 날들 ♡ 상일STS 네일프린스
댓글을 달아 주세요